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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21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22-05-29 01:07 조회 81

‘선천성 림프양 세포’의 기능 최초 규명
면역세포의 새로운 기능 밝혀내 면역질환 치료의 기틀 제공 
서울대학교 의학과 김혜영 부교수

  • 2010년 ‘선천성 림프양 세포’는 세계 면역학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이렇게 중요한 세포가 그동안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아할 정도로 이 세포는 여러 면역질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김혜영 교수는 선천성 림프양 세포를 초창기부터 연구한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이 세포의 밝혀지지 않았던 기능을 최초로 규명했다. 새로운 면역세포의 기능을 찾아내고 역할을 규명해 면역질환 치료의 새 지평을 열고 있는 김 교수를 만나보았다.

     

    NKT 세포와 자가면역질환의 관계를 밝히다

    ‘면역’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인체를 지키는 방어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체내에 침입했을 때 저지하는 역할을 한다. 인체 면역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면역세포는 외부 침입자와 정상적인 자기세포를 구분한다. 그런데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정상적인 자기세포를 공격하는 것이 바로 자가면역질환이다. 류머티스 관절염, 천식, 알레르기, 아토피피부염, 루푸스 등이 대표적인 질환이다. 면역의 문제는 자가면역질환뿐 아니라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이식거부반응 등 여러 질병 및 의학적 현상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인류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김 교수는 서울대학교 면역학 박사과정 당시 면역기능에 관여하는 T세포(T-Cell) 중 하나인 ‘NKT 세포’(자연살해 T세포)와 류머티스 관절염의 관계를 연구했다. 그는 NKT 세포가 없는 쥐와 NKT 세포가 있는 정상 쥐에서 류머티스 관절염을 유도한 뒤 관절의 붓기와 관절 조직에서 염증세포의 침윤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NKT 세포가 없는 쥐에서는 관절염이 거의 발생하지지 않았지만, NKT 세포가 있는 정상 쥐에서는 관절염이 심하게 발생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가면역질환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던 NKT 세포가 오히려 관절염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면역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과 「Journal of clinical investigation」에 주저자로 발표되었다.

     

    박사과정을 마친 김 교수는 2006년 하버드 의과대학/보스턴 어린이병원에서 박사 후 과정을 시작했다. 그가 합류한 천식 분야의 권위자인 우메츠 박사(Dale. T. Umetsu)의 연구팀은 김 교수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선천성 면역계, 그 중에서도 NKT 세포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NKT 세포는 천식의 치료시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세포군이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감염에 의한 천식, 오존과 같은 환경오염 물질에 의해 유도되는 천식, 항원에 의해 유도되는 천식 등 다양한 질병 모델에서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당시 우메츠 연구팀은 NKT 세포가 천식을 유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새로운 가설을 세워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를 반박하는 연구팀도 있었기에 몇 가지 천식 모델을 구축하여 NKT 세포가 천식을 유도하는 세포임을 밝히는 것이 그의 초기 연구주제였다.

     

    “저희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NKT 세포가 천식을 유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NKT 세포들의 저해활성을 촉진시키는 방법 등 관련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하루 빨리 천식의 새로운 치료제로 개발되길 기대해 봅니다. 이 연구를 통해, 또 제가 지금까지 연구를 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특정 연구결과가 모든 분야에 100% 적용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같은 주제라도 각각의 연구팀의 관심분야와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일부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결과를 얻었을 때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 좀 더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핫이슈 ‘선천성 림프양 세포’의 새로운 기능 최초 규명

    하버드에서 김 교수가 가장 공을 들인 연구는 NKT 세포보다는 ‘선천성 림프양 세포’(Innate lymphoid cell)에 대한 것이다. 면역세포는 선천성 면역세포와 후천성 면역세포 2가지로 나눠지는데, 리스트에 없던 새로운 면역세포인 선천성 림프양 세포의 존재가 2010년 처음 밝혀졌다. 김 교수는 최근 국내외 연구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제2형 선천성 림프양 세포에 대한 연구를 초창기부터 수행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폐에서 선천성 림프양 세포가 존재함을 처음으로 확인하고 그 기능을 천식에 연결한 연구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선천성 림프양 세포는 선천성 사이토카인(innate cytokine)의 자극에 반응하며, T세포보다 더 빠르게 많은 양의 사이토카인을 분비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세포들은 여러 면역 질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점막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초기에 선천성 림프양 세포는 지방세포, 장의 림프절 등에서 발견되었다. 이에 김 교수가 속한 연구팀은 점막 면역계를 구성하고 있는 폐에서도 동일한 세포가 존재하지 않을까 추측했다. 연구 결과 폐에 선천성 림프양 세포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의 감염시 폐의 표피세포는 외부의 침입에 반응하는 방어기전인 인터루킨-25, 인터루킨-33과 같은 선천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게 된다. 선천성 림프양 세포는 이러한 사이토카인에 결합하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어서 빠르게 활성화 및 증식되어 천식을 유발할 수 있는 타입2 사이토카인인 인터루킨-13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이러한 반응은 매우 강력한 것으로서 유전적으로 적응 면역계가 결여되게 만든 쥐를 사용한 실험에서 선천성 림프양 세포만으로 강한 면역 활성이 일어나 천식이 유도됨을 확인했다. 
    당시 선천성 림프양 세포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컸고 쟁쟁한 팀들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김 교수가 중심적인 역할을 한 연구팀이 선천성 림프양 세포가 폐 속에 존재하며, 천식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선천성 림프양 세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천성 림프양 세포는 T세포와 견줄 만큼 면역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새로운 세포이므로, 앞으로 다양한 병의 원인을 이해하는데 있어 새로운 타깃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천성 림프양 세포 후속연구로 비만과 천식의 관계 밝혀내

    선천성 림프양 세포는 주목받는 연구 분야였기 때문에 당시 연구팀 내에서는 그로인한 경쟁과 갈등도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김 교수는 제2형 선천성 림프양 세포 연구와 관련 후속 연구를 함께 진행했다. 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된 연구를 통해 그는 비만 상태에서 새로운 타입의 선천성 림프양 세포가 천식을 유도함을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비만인 사람들이 정상인에 비해 천식이 유발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만은 인터루킨-17이라는 사이토카인 분비와 연관되어 있음이 보고되었지만, 천식은 제2형 사이토카인에 의해 발생되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어서 관련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실험쥐의 비만을 유도하려면 고지방식을 장기간 먹여야하므로 오랜 시간을 필요하다. 그래서 김 교수는 한번의 실험으로 많은 데이터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비만을 유도한 쥐의 폐세포를 항체로 염색을 해본 결과 T세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터루킨-17을 발현하는 세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전 실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세포군이 다른 타입의 선천성 림프양 세포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다양한 표지(marker)를 사용해 확인한 결과 비만을 유도한 쥐의 폐에서 인터루킨-17을 분비하는 제3형의 선천성 림프양 세포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비만 상태에서의 영양분 과다,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인플라마좀(inflamasome)을 활성화시켜 인터루킨-1의 분비를 증가시키고, 제3형 선천성 림프양 세포가 이에 반응해 활성화됨으로서 인터루킨-17의 분비를 증가시켜 새로운 형태의 천식이 유도되는 것이다.

     

    “저는 이 연구에 가장 큰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고생이 제일 심했을 때 진행한 실험이었고, 모델 자체도 한 번 실험하는데 3달 이상 소요되는 장기 연구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주제였음에도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증명하는 과정에서 큰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김 교수가 우메츠 연구팀에서 마지막으로 진행한 이 연구 결과는 「Nature medicine」에 게재되었다. 그는 박사 후 과정의 활발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2011년에 보스턴 어린이병원에서 수여하는 houseofficer develoment award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국 내 한국 연구자 수준 높아… 연구인력 국내 유입 정책 시급

    김 교수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거쳐 인스트럭터로 일했다. 그는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모이는 글로벌한 학교 하버드에서 한국인 연구원들은 ‘손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전했다. 실험했을 때 결과가 깔끔하고 믿을만하게 나온다는 것. 한국에서 온 사람만 뽑는 연구팀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 연구자들의 수준은 높은 편이다. 문제는 이렇게 훌륭한 연구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보다는 미국 잔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훌륭하게 성장한 인력을 한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미국에 머무르는 것은 한국에서 자리 잡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나라가 크다 보니 연구 인력이 필요한 곳이 많지만 한국은 자리가 부족한 실정이죠. 그래서 한 군데 공고가 나면 경쟁이 치열합니다. 꼭 연구소, 학교 등이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의 대우를 해주면서 연구자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의 연구 환경은 어떻게 다를까. 김 교수는 이제 기기 시설 등 하드웨어적 부분은 하버드대와 서울대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연구인력 대부분이 학생들이라 배워서 실험을 하기에 진행이 더딘 반면, 하버드대는 각국의 박사들 중에서도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전문성을 가지고 빨리빨리 끝낼 수 있는 차이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기초 연구자의 길 고되지만 보람 있어

    김 교수는 최근 ‘2014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 펠로십’을 수상했다. 펠로십은 만 40세 이하의 성장 잠재성이 우수한 여성 생명과학자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그는 다양한 면역세포가 천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선천성 림프양 세포의 기능을 최초로 규명한 연구팀 중 한 명으로서 면역세포의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는데 큰 역할을 한 점을 인정받아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교수는 결혼, 출산, 육아와 연구를 병행하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온 선배 과학자로서 후배들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연구를 시작한지 십여 년밖에 되지 않은 제가 감히 이런 조언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으나 연구를 한다는 것, 특히 기초 연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자신과의 싸움인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아도 여전히 생계와 진로를 고민해야 하죠. 그러나 연구 자체를 즐겁게 여기고 보람을 느낀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연구 활동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마세요. 그 실패를 밑거름으로 더 나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오늘도 연구실에서 땀 흘리고 있는 후배 과학자 여러분,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

     

    면역세포들의 숨겨진 기능 밝히고 치료법 찾길 희망

    2014년 3월, 서울대학교 의학과 부교수로 부임한 그는 현재 연구팀을 꾸리고 연구실을 세팅하는 일이 한창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김 교수는 선천성 림프양 세포와 인터랙션할 수 있는 대식 세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선천성 림프양 세포는 비교적 최근에 밝혀진 면역세포이기 때문에 세포 자체에 대한 연구가 대부분이다. 그는 기존 연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T세포가 수지상세포와 상호작용을 통해 항원을 인식해 활성화되듯 선천성 림프양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매개체 역시 존재하리라고 생각하고 그 타깃으로 대식세포를 설정했다.


    대식세포는 선천성 면역계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세포로서 외부 자극이나 병원체 감염 시 가장 먼저 그것을 탐지해서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무엇보다 대식세포는 선천성 림프양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인터루킨들을 분비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진행할 계획이다.

    “저는 그동안 기존 치료제가 잘 듣지 않는 환자군에서 병을 유발할 수 있는 타깃 세포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습니다. 지금까지 타깃이 되지 않았던 세포들이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치료법 외에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세포들의 기능을 규명하고, 그 세포들을 타깃으로 하는 치료방법을 찾는 것이 장기적인 계획입니다.”

     

    인류가 면역질환을 정복하기까지는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보단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목표를 성취하게 되리란 것. 겸손하고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걷는 이 젊고 유망한 여성과학자의 손끝에서 면역질환의 수수께끼들이 하나씩 풀리게 되길 기대해 본다.

     

     

    <손지혜 기자 reporter@s21.co.kr>

     

    • 글쓴날 : [14-09-03 12:34]